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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어쩜 그렇게 매력덩어리니. 사랑한다. 

 

 

서브여주. 서브남주.

 

  서브는 일단 매력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서브가 등장하는 시점에는 보통 주인공의 단점으로 인해 사랑이 삐긋거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혹은 썸/연애 단계에 권태기가 찾아오는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이 필요할 때, 작가는 서브를 부른다.

 

  서브는 전 글에 써놓았던 것처럼, 주인공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의 단점을 탐탁지 않아 하던 독자는 서브를 보고 좋아하게 된다. 얼굴부터 성격까지 주인공과 다르게 생겨가지곤 일방적 사랑을 쌍방향 사랑으로 발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과정이 어떤지는 제쳐두고, 그 노력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뻔히 보이는 실패에도, 그들은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혹은 완전한 납득을 하기 위해, 아니면 내가 널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를 담은 "그래도"를 가지고 돌진한다. 이 "그래도"가 얼마나 애절처절하게 다가오는지 웬만한 순정만화를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니 최선을 다할 거야. 그래도 나는 아직 납득할 수 없어. 그래도 내가 들어갈 수 있는틈이 있지 않을까? 

 

  더러운 과정이든, 정면돌파든, 그들은 돌진한다. 그리고 처참히 깨진다. 부정하다가 인정한다. 주인공의 행복을 바라는 서브도 있고 주인공을 저주하며 떠나는 서브도 있다. 보통은 주인공의 진실된 사랑(..)이나 주인공한테 질 수 밖에 없는 장점을 보고 인정하며 떠난다. 개인적으로 주인공과 서브가 이야기하다가 피식 웃으며 내가 졌다고 말하는 서브를 좋아한다. 피식 웃는 서브가 울면서 왜 나는 안 되냐고 감정을 쏟는 서브보다 더 슬프게 느껴진다. 애써 감정을 더 참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주인공을 저주하며 끝까지 인정 못 한다고 말하는 서브는 조금 귀엽게 느껴진다.

 

  삐뚤한 감정을 있는 힘껏 숨기지 않고 말한다는 점이 나에겐 조금 귀엽다. 보통 이런 서브는 확실하게 주인공의 마음을 사로잡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더러운 과정을 거쳐간다. 주인공 앞에서는 아양부리고 뒤에서 주인공 애인에게는 못된 짓을 한다. 주인공 애인이 하는 말을 못 믿게 하려고 여러 꼼수를 써서 주인공이 자신의 말만 믿게 하도록 만든다. 근데 이런 서브는 대부분 여자인게 아쉽다. 남자서브가 여주 마음 얻으려고 이런 수작 부리는 작품은 없나요? 각설하고, 저런 서브. 매력적이지 않은가? 흔히 악녀라고 불렸는데. 요즘 순정만화는 이 악녀의 속마음을 과거보다 더 보여줘서 아예 미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서브는 주인공의 등을 밀어준다. 가서 그 사람을 놓치지 말라고. 내 몫 이상으로 행복하라고. 주인공은 서브의 실패를 보고 강경해지고 시각이 넓어진다. 서브는 주인공의 성공을 보며 몰려오는 질투를 포함한 기타 감정을 인내한다.

 

  주인공보다 더 멋있는 서브가 있다. 주인공이 워낙 쓰레기라서 멋있어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주인공보다 더 취향일 수도 있는 거고. 서브는 먼저 주인공을 욕망해서 접근하고 서브 본인에게 관심을 달라고 한다. 그렇지만 전에 글에서 말했듯, 주인공이 욕망하는 걸 좇아야 한다.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주인공은 열망/욕망하는 게 있어야 한다. 어떤 시련과 부딪힐 때도 열망이 꺾이든, 시련이 꺾이든, 일단 욕망을 따라야 하는게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지어지는 방식이다. 순정만화도 이야기이니 주인공이 욕망하는 걸 좇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련(서브)이 꺾여야 한다. 사랑의 환상을 재생산하는 순정만화이기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때 작가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 독자를 납득시키냐이다. 주인공이 왜 서브보다 자신의 애인을 더 열망하는지 이해시켜야한다. 중요하다. 이거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나는 전에 한 순정만화에서 (명은 밝히지 않겠다...) 주인공이 왜 서브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진짜 이해가 안 되어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더니 우주 밖으로 치솟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 애인이 정말 쓰레기 중에 쓰레기였기 때문이다. 어린 내가 보았을 때는 인간 쓰레기여서 주인공이 정말정말정말 진짜진짜진짜 참으로참으로참으로 답답했다. 중간에 읽다가 때려치울 뻔했다. 거짓 하나 안 보태고 오기로 읽었다. 지금 읽으면 좀 다르게 보이려나.  

 

 

  서브가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나를 주인공 애인보다 일찍 만났다면, 넌 나를 사랑했을 거야." 여기에서 "주인공 애인보다 일찍 만났다면."이 중요하다. 지금껏 읽은 여러 만화를 떠올려보자. 그 작품은 과연 <맞아.>라고 대답할까, <아니야.>라고 대답할까? 

 

  <맞아.> 이렇게 대답하는 만화는 짜장 드물다. 적어도 내가 읽은 작품 한에서는 정말 드물다. 한두 만화가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맞아라고 한 이유는 뭐라고 할까? 내가 작가라면, 운명이라는 단어를 썼을 것 같다. "맞아. 하지만 내가 너를 먼저 만난 건 아니잖아. 내가 00이를 먼저 만난 건 운명이야." 흠.. 촌스럽군. "맞아. 너도 충분히 매력있으니 널 사랑했을 거야. 하지만, 00이를 만난 후에는 네가 아닌 00이를 사랑했을 거야." 음.. 잘 모르겠다. 

 

  <아니야.> 이렇게 대답하는 만화가 훠월씨인 많다. "아니야. 난 00이를 언제 만났다하더라도 00이를 사랑했을 거야." "걔랑 나는 운명이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걔밖에 없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걔야." "아니야. 나는 평생 걜 좋아할 수 밖에 없어." 어쩌고 저쩌고.

  어쩔 수 없다. 순정만화 법칙상, '운명'이 존재하니까. 일본에서는 새끼 손가락에 붉은 실을 단 채 태어난다고 하는데, 어찌 운명을 거부할 수 있는가. 기억상실에 걸린 후에도 다시 똑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흔한데 어찌 <맞아.>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전생에 우린 사랑을 못 다 이룬 연인이라서, 현세에 만나게 해주었다는데 어찌 그렇다고 하는가. 사랑과 연애의 환상을 키워주고 재생산하는 순정만화에서 강한 운명과 하늘이 이어준 인연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거부할까.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서브는 결코 사건을 만들기 위해 쓰고 버려지는 캐릭터가 되면 안 된다. 일회성 캐릭터로 그치기만 하면 안 된다. 내가 용서 못한다. 그들은 더 성장할 수 있고 아픔을 견디는 강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다음에 올 사랑에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서브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주인공이 서브를 택하길 마지 않지만, 우리는 주인공이 주인공 애인에게 돌아갈 것을 안다. 그렇기에, 서브에게 열광할 수 밖에 없고 서브에게 더 마음이 갈 수 밖에 없으며, 자꾸 눈에 밟힌다. 하지만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십대가 마주한 사랑의 실패와 성공은 한 뺨 아니 두 뺨 성장하게 해주기에. 더 멋있는 사람이 되기에. 서브는 실패를 한 경험이 있는 우리 모두와 닮아있기에 어쩌면 하나의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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